이 책을 마츠텔인들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선조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명의 젊은 사내, 안타깝게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행진곡: “마츠텔인의 행진”의 작곡가, 그리고 현재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을 그들의 후손들에게 바칩니다. 1 1. -서문- 아래 발췌된 구절들은 신에서 믿음으로의 전이 - 또는 발전을 인류가 어떻게 신봉했고, 노래했으며 상상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조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저 각 권(權)의 현존 가장 권위있는 성경들에서 따온 것임으로 보편적인 이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님을 앞으로의 야기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밝힌다. 작품의 구상에 영감을 준 소설 (모비 딕: Moby Dick)의 저자,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다. 2 2. -발췌록-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animal that moveth on the earth. Genesis 1:28 — 1890 Darby Bible “생육하고 전성하여 땅을 가득 채움으로써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날짐승과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and do not lean on your own understanding.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and he will make straight your paths.” -Proverbs 3:5-6 “너희는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지하고, 자기의 이해에 기대지 말아라. 주께서 모든 방법으로 그를 인정하시니, 그가 주의 길을 바로 가실 것이다.” 3 “‘If you can’t?” said Jesus. “Everything is possible for one who believes.” Mark 9:23 – The Century "만약 할 수 없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믿는 자에게 가능하다.” “Now faith is confidence in what we hope for and assurance about what we do not see.” Hebrews 11:1 – The Lexham English Bible “이제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4 3. -사전- 마츠텔(Matsutel): 필자가 착안한 가상의 조그마한 마을. 프랑스의 극서쪽에 위치한 알프스 산맥의 중턱 어딘가의 협곡 밑에 자리한다. 마츠텔인: 마츠텔에 거주하는 사람들. 플뢰헤(Flehe): 마츠텔의 북쪽에 약 20 여개의 집들로 이루어진 정착지.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실제 지명을 필자가 따왔다. 플뢰헤인: 플뢰헤의 거주민들 운터발렌 (Unterwalden): 고대 스위스 연방 동맹에 속한 세개의 자치주 중 하나로, 훗날 옵발덴(Obwalden)과 니드발덴(Nidwalden)으로 분리된다. 아바돈 (Abaddon): 성경에 등장하는 파괴의 악마 5 4. -본문- 마츠텔인의 행진 - 말 그대로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마츠텔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행진이었다. 마츠텔인들은 고대 스위스, 운터발렌인 (Unterwalden) 자치주인들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이다. 마을은 특이하게도 두 개의 거대한 산 사이에 비좁게, 가여울 정도로 좁은 공간에 끼어 있는 하나의 아담한 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위치해 있는 작은 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길은 원래 작은 시냇물 줄기가 흐르던 곳이었으나 선대 마츠텔들, 아니 플뢰헤인들은 세력다툼으로 인해 파리를 떠나 힘없이 이곳저곳 방랑하던 존재들이었음으로, 정착할 수 있는 곳만 보였다면 앞뒤 사정 따윈 고려하지 않고 마을을 지었고, 그 장소가 바로 현재에 와서 마츠텔이라 불리는 곳 이였다. 양쪽으로 깎아내리는 듯한 절벽으로 둘러쌓인 이 마을의 집들은 모두 규격화되어 있었다. 네 개의 기둥으로 지탱되는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집들. 두 개의 기둥은 땅에, 그리고 나머지 두개는 절벽에 구멍을 파 그곳에 꽂아 두었다. 그러나, 그 좁은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위치해 있는 20 여개의 집들은 여타 주택들과는 달랐다. 넓고 호화로운 거실, 방 등 모든 편의시설이 있었으며, 시냇물 줄기를 흙으로 덮어버렸기에 물을 항상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 마츠텔에서만큼은 굉장히 귀한 물로 채워진 두개의 큰 수영장 또한 존재했다. 그들은 선대 마츠텔인들, 그러니까 플뢰헤인들의 정통을 이어받았단 의미로 자신들이 사는 구역을 플뢰헤라 칭했고, 길 아래에 사는 마츠텔인들 – 그들은 플뢰헤인들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저항하는 자들” 이란 뜻의 마츠텔로 자신들이 사는 구역을 이름 붙였다. 그러나, 이렇게 항상 대립이 존재했음에도 플뢰헤와 마츠텔은 하나의 마을로 묶여 관리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형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가끔 이 하나의 마을이 잘 지내고 있는지 보러 그 거대하고 웅장한 마차를 타고 빙빙 돌아오는 조사관들이 그저 노트에 “이상 전무함” 따위를 적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플뢰헤와 마츠텔은 세금 또한 내지 않았다. 산골짜기 한가운데 인터넷, 우편 시스템 등이 있을 리가 만무했고, 또한 그들의 수입과 지출은 그 아담한 마을 안에서 대부분 해결되었기에, 그들이 내는 세금의 양 또한 터무니없이 적은 관계로 정부는 그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방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1900 년대에 시간이 멈춰있다고 해도 믿을 이 마을은 일년에 한번, 굉장히 중요한 연례 행사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마츠텔인의 행진이다. 마츠텔인들은 그들이 겪는 부당함과 경멸, 그리고 여러 가지 자원의 부족을 6 플뢰헤인들에게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진을 하였고, 그 날 만큼은 플뢰헤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문과 창문을 굳게 잠그고 집 안에서 쥐 죽은 듯이 숨어 지냈다. 그 포악하고 요란하다는 플뢰헤의 아이들마저 겁에 질려 침대 속에 숨어 그 날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원했다. 대략 60 명의 마츠텔인들은 오솔길의 남쪽 끝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며 북쪽 플뢰헤를 향한 행진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것은 격노와 분노가 뒤섞여 보기 싫을 정도로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감정이 지배하는 시위가 아니라, 마을 삶들 모두가 하나의 단결된 목표를 향해 신나게 걷는 하나의 기념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늘이 바로 마츠텔인의 행진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 6 시, 플뢰헤의 기상종보다 대략 두시간 정도 일찍 울리는 마츠텔의 청량한 종소리에 맞춰 기상한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기쁘고 설레어 보였고, 그들은 곳 매년 행진의 수장을 자진하여 맡는 프리드리히의 지휘 하에 모두 우물 주면으로 모여들었다. 프레드리히는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로, 가끔 정부에서 파견된 조사관이 오거나 아니면 마을을 대표할 일이 있을 때 그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입을 떼자, 사람들은 모두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자, 우리는 또다시 한번 우리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사, 신이 공평하게 나눈 권력을 독차지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가하는 행진을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전해와 같습니다. 그들이 나와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희와 희열에 휩쓸려 고함치기 시작했고, 곧 행진은 시작되었다. 마츠텔인들은 천천히 북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수는 많았으나 발걸음은 너무나도 가벼워 들리지 않을 정도였고, 그들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걷기 시작한 지 대략 5 분 정도, 프뢰헤의 집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다 낡아 군데군데 헤진, 맞춤 제작된 푸른 정장을 위아래로 입은 젊은 사내가 분노와 격분으로 가득 찬 홍조된 얼굴로 자칭 “마츠텔인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그는 행렬의 정중앙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노장, 프레드리히는 그의 앞으로 떨리는 다리와 함께 걸어가 눈을 마주쳤다. 그의 전신은 심각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너무나 긴장을 한 나머지 잘 움직이지도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마을의 대표자라는 지위와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이내 자세와 목소리를 가다듬고서는 소리쳤다. 7 “감히 누가 가히 신성시되어야 마땅하고 그 어떤 것보다 중대하며 황홀하고 의미있는 행사인 마츠텔인의 행진을 방해한단 말인가! 야훼여, 보고 있는가? 여기 이 무모하고 어리석다 못해 삶의 의미, 가치, 이유 그 모든 것이 전무한,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자 – 아니 짐승이 우리의 행진을 가로막고 있다! 세 가지 규율에 따라 이 자를 처벌하거나 행진 밖으로 내쫓을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이 모독적인 행위에 대한 처벌 – 아니 속죄를 이 젊은 청년에게 기꺼이 선물해야 할 것이다.” 행렬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린 채 그 사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프레드리히는 그의 언변, 또는 요설을 이어갔다. “아아, 젊은이,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말게. 이 작은 깨달음의 선물은, 마치 우리, 아니 전 인류의 선조,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취하고 깨달았을 수치심, 다채로움, 인류애 등을 자네도 같이 느끼게 해주는 그대 인생의 일생일대의 축배이자 속죄를 위한 독배 일걸세. 실수의 대가로 자네는 양날의 검을 선물받을 것이네. 한쪽 면 만을 취하던, 아니면 양날을 모두 취하던, 아니면 그 칼로 우리를 공격하던, 우리는 개의치 않을 것이네. 이 행진을 가로막은 죄에 대한 대가로 자네는 반은 선물이고 반을 처벌인, 그런 신비한 물건을 선물받는 걸세. 이게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죄를 지었으나 선물을 받다니…. 에이브라함 (소설 모비 딕 중 주인공이 탑승한 배의 선장. 원칙과 규율을 철저히 지키는 것에 엄격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가 봤다면 환장해서 고래고 뭐고 포기하고 배를 뒤집어 엎었을 거야…. 끌끌.” 주변의 마츠텔인들은 숨죽여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자, 그 화창한 봄날씨에 새들이 지저귀고 꽃들이 노래해야 할 것 같은 광경에는 그 젊은 남자를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만이 남아 있었다. 마치 선물의 포장을 뜯으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실체를 목격했을 때와의 실망감과 같이 유난이 화창했던 그 날은 을씨년스러워지고 있었다. 프레드리히는 남자에게 자신이 지니고 있던 작은 단도를 건네주었고, 다시 조언을 계속해 나갔다. 8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 우리와 함께함으로서 표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군.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행진에 반열에 오른 자, 그것이 죄수던, 평범한 시민이던, 정부에서 일하는 나부랭이들이던, 개의치 않고 품는다네. 자네도 거대한 축복의 물결에 휘말려보세. 그분들 – 아니 그놈들은 우리를 보고 깨닫겠지…그리고 우리는 그분 – 흠흠, 노쇠한 탓인지 계속 말이 잘못 나오는군, 그놈들을 향한 행진을 그제서야 멈출 것이라네. 그들이 깨닫고,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거야. 자네 따위가 우리를 멈출 수 있는 가능성 따위는 없네. 일말의 그 썩어들어간 알량한 양심이 남아 있다면, 우리와 함께 하세. 이 얼마나 따사로운 봄날인가. 그렇다면…앞으로!” 행렬은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는 어느새 행렬에 속해 있었고, 그 주변을 지나가는 어떤 중년 남성의 부인을 향한 속닥거림을 듣고야 말았다. “일단 우리와 함께 가게 포용해 줍시다. 조금 있으면 마음이 바뀌겠지. 행진에 반대하는 어떤 자도 설득시키거나 어떻게 하든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고 하지 않지 않나.” 사내는 격분했다. 세상 – 그 사내에게는 마츠텔이 세상의 전부였기에 – 이 자신에게 “어리석은 방랑자여, 단념하라!” 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매우 불쾌한 분노와 슬픔의 잠긴 그의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행진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내용을 주로 하는 덕담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즐겁게 해주려고 할수록, 그는 기쁨과 환희, 희망과 설렘, 은혜와 감사에서 멀어져 홀로 고독함을 까무러치도록 가슴 끝까지 느끼며 그의 심장 한가운데에서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분노로 전환하고 있었다. 아아, 홀로 소외된 가여운 자여, 세상에 자신을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네놈을 이해해줄 수 있을 때까지 악을 쓰며 소리쳐야 하지 않겠는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저항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적이던 목숨을 내놓고 맞서 싸워 이길 준비가 되지 않았는가? 지금 자네는 무패의 고대 운터발렌에 소속된 이들보다 더 처절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지 않은가? 그들은 패배해도 자결이라는 최후의 수단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네놈을 보라. 지금 당장 패배하면 모두가 너를 배척하는 이 결핍되고 굳게 닫힌 사회에서 평생을 고독함 만을 친구로 삼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네놈에게는 자결할 용기도, 대담함도 없지 않은가? 9 마츠텔인이여, 일어나서 세상 끝까지 저항하고 발악해라. 혹여 그 끝에 가서 삶의 연명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름 모를 사내는 일어났고, 그를 지나쳐 흐릿해져가는 행렬을 먹잇감을 좆는 맹수처럼 맹렬히 쫓아갔다. 행진을 다시 한번 가로막은 그는 노인에게서 받은 단도를 내팽개친 다음, 우렁차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고함쳤다.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의 가난을 이런 식으로 표출해야 합니까? 왜 플뢰헤의 인간들이 우리를 이해해주고 도움을 주길 원합니까? 가난은 극복하면 됩니다. 가난에 대한 서글픔과 억울함을 우리는 왜 저들에게 표출하고 있는 겁니까? 그 지독한 가난의 원인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그 경멸을 기득권 쪽으로 돌리기 위한 명분 그 자체를 위한 행진이 이것, 마츠텔인의 행진이 아닙니까? 그만둡시다. 이런 거짓된 행위 –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존경하고 신성시하는 운터발렌 부대와 야훼에 대한 모독입니다. 물마저 독하다 불평할 그들이여, 상처받아 아무 것도 삼키지 못하는 용맹함뿐인 사자들이여, 포용이 아닌 흡수를 강행하는 괴물들이여, 가디메데의 분노의 잔을 숭배하게 된 변절자들이여, 여기서 멈춥시다. 그것이 파멸을 멈추는 길입니다. 저기 문을 굳게 잠그고 벌벌 떨고 있는 플뢰헤의 인간들을 보십시오. 단순한 무력 앞에서 단숨에 무기력해진 저들이 과연 우리를 포용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 젊은이는 너무 힘주어 말한 나머지 행렬을 좆아온 피로와 함께 겹쳐 그 자리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프레드리히의 손짓 하나에 그의 열띤 연설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외면하고 오솔길을 따라 멀어져 갔다. 사내는 모든 것을 잃은 표정으로 그들을 허탈하고 공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아, 앞으로의 비참함 만이 존재하는 그의 앞날에 누가 감히 위로를 건네 줄 수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자는 지옥에서 비참한 삶을 예수의 탄생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구차히 연명해온 죄 없는 사탄뿐일 것이다. 내가 가엾은 사내에게 기록자로서 건네 줄 수 있는 가능한 가장 축복받은 선물은 하나님, 아 물론 존재한다면, 에게 이 자와 함께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다. 만약 안타깝게도 내 요청을 거절하신다면, 저 사내에겐 지금 절실한 믿음보다 슬픔을 나눌 지옥에서 온 악마들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름없는 젊은이를 절망에 빠지게 한 마츠텔인의 행진은 자신의 집 창문으로 그 행진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한 무명 작곡가에 의해 작곡되었다. 곡의 이름은 “마츠텔인의 행진”. 여태까지 많은 초등학생들의 첫 악기 입문곡으로 쓰이고 있는 곡이다. 아, 그리고 그 사내에게 행진곡 안에 그를 기리는 작은 부분이 있음을 인지하길 바라며 앞으로의 아바돈과 같은 삶 전 무명의 작곡가에게 마지막으로 감사를 표해 보길 권한다. 10 5. 해설 발췌된 어록 부분의 구절들은 마구잡이로 삽입된 것처럼 보일지언정,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장 위 구절은 여호와의 말씀을, 두 번째 구절은 그의 말을 믿을 것을, 세 번째 구절은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네 번째 구절은 바람은 확고한 믿음으로써 이루어진다는 뜻을 각각 내포하고 있다. 즉, 이 네 개의 각기 다른 권에서 따온 구절들을 합쳐보면 대략 “하나님을 말씀을 굳건히 믿음으로써 바라는 바가 이루어진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문장은 성경 어디서나 나와도 이질감이 전무할 듯한 문장이지만, 사실상 악명높은 악마들보다도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짓을 저질러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집합체 – 성경과 관련 지어 정당화할 수 있다면 문제삼지 않는다는 뜻이지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네번째 구절에서 믿음으로 바라는 바가 이루어진 다음 다시 첫 번째 구절 – 새로운 욕망을 내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장해도 일말의 의심이 들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내포하고 있는 하나의 함정 같은 것이다. 실제로 이런 믿음과 성취의 위험한 사이클은 성경 군데군데, 아니, 같은 권 안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내재되어 있다. 필자가 굳이 각기 다른 권에서 구절들을 가져온 것은 비록 각기 다른 챕터들임에도 이 사이클이 이루어진다는 것, 즉, 성경 전체가 이 체인에 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다 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소설 속 마츠텔인들은 바라는 바, 플뢰헤인들의 속죄와 몰락을 위해 매년 같은 행진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들의 리더, 프레드리히의 품속에는 단도가 있고, 행렬에 속한 사람들은 그가 농담을 던지면 웃고 사내에게 조언을 하면 째려보는 등 그를 맹목적으로 따른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믿음과 바람을 이끄는 노장, 프레드리히조차 진실 – 그들의 가난은 플뢰헤인들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들의 탓이라는 것 – 을 젊은 사내가 밝혔을 때, 몸을 덜덜 떨며 조언과 반박을 시작한다. 그러나 반박이 지속되고 주변인들이 자신을 믿는 다는 것을 실감할수록 그의 언어는 점점 맹목적이고 극단적으로 변한다. 그 와중, 그는 그의 말 군데군데 성경과 하나님을 언급하며 사내를 좌절시킴과 동시에 정당성까지 부여한다. 즉, 행렬과 사내가 마주치는 장면은 잘못된 욕망과 진실이 마주했을 때, 욕망은 성경으로 정당성을 취함으로써 진실을 무시할 힘과 권한이 생긴다는 11 것을 묘사한 것이다. 사람들은 성경과 진실, 두 개의 절대적인 것이 만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잘못된 바람 - 행진은 앞으로 나아가고, 진실, 즉 사내는 뒤에 남겨져 행진에서 복귀한 그들의 핍박과 괴롭힘을 처참하게 기다려야 한다. 행진을 그릇된 욕망으로 묘사하는 또 하나의 장면은 바로 프레드리히가 단도를 꺼내들 때이다. 그가 품속에 단도를 지니고 있음은 플뢰헤인들을 죽이거나 협박하려는 목적일 것이고, 그는 사내에게 최소한의 양보와 명분을 위해 단도를 건네 준다. 그러나, 단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프레드리히와 행진은 맨손일지언정 충분이 위험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프레드리히가 플뢰헤인들을 지칭할 때, 명칭에 존대를 붙일지 말지를 계속해서 헷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그는 플뢰헤인들을 우러러본다. 결국 그들의 사과를 받아내고 싶다는 것은, 그가 존경하는 부자들인 플레회인들의 자원을 나눠 갖고 싶다는 뜻이고, 결국 그 역시 대의명분이 아닌 개인의 욕망의 휘둘려 매년 행진의 리더를 자처해 맡고 있는 것이었던 것뿐이다. 결국 마츠텔인 중 신을 진심으로 받드는 이는 없었고, 모두 신을 자신의 바람과 욕망을 정당화하고 그럴싸하게 꾸미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얼마나 미련하고 우스운 일인가. 필자는 전반적으로 성경을 자신들의 속죄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주변인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자 했다. 언뜻 들어보면 자신들의 상황이 아닐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해당되는 사례일 것이다. 법적으로 금지된 공공장소에서 구걸하는 거지에게 조금의 선심을 베풀 때, 시험 중 정담을 공유하자는 친구의 부름에 응할 때 등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애써 성경에서 그에 대한 용서나 허락이 담긴 구절을 생각하거나, 가정하는 경우는 번번하다. 성경이 쓰여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구절들을 법과 규율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접목시키기도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성경과 하느님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시각,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우리의 삶에 접목시키는 방법을 새로이 개편하고, 난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여호와의 말씀이 아닌 개인의 판단과 자유의지로 헤쳐 나갈 용기와 기반을 이 단편을 통해 제공하고 싶었다. 그러하나, 필자의 의도와 작은 선물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이 단편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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